민락의 겨울

겨울 내내 고무줄 바지에 검정 패딩을 입고 지냈다. 아무리 부산이라 해도 영하의 날씨에 바닷바람 강바람 맞으며 자전거로 출퇴근했기 때문에 멋은 사치였다. 페달 밟으며 김혜리의 <조용한 생활> 들으며 잠을 깨웠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도착하면 전등을 켜고 창문을 열고 명상하고 스트레칭하고 조성진의 라벨을 들으며 일기를 썼다. 

센텀시티나 강남이나 음식이 별로인 건 매한가지라, 점심은 주로 영상센터 구내식당의 6000원짜리 밥을 먹었다. 실은 밥은 건너뛰고 얼음을 뺀 말차 라떼를 마시며 책 읽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퇴근 후엔 회사 체력단련실에서 달리기를 했다. 하루치의 노동을 마치고 땀흘리고 샤워하고 자전거로 퇴근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겨울이 깊어가며 점점 더 맨얼굴로, 체육인의 입성으로 출근하는 날이 잦아졌다. 젊은 여자의 얼굴은 몸은 어떠해야 하는가. 세상은 지금이 가장 좋은 시절이라며 발산하고 소비하라고 보챈다. 그러나 암만 빨라도 마흔은 넘어야 좋은 시절이 올 것 같다. 일에서 자기확신을 갖고 미감에 맞는 의식주를 누리고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 두려면.

도처에서 리더십이 말 그대로 부재 중이다. 

용기 내어 법정 밖으로 걸어나와 보니 관료제는 사람을 위축시킨다. 현장은 생존투쟁의 난장이다. 과격함이 세계를 망치고 있다. 데미지 컨트롤은 언제나 그렇듯 섬세하고 신중한 우리의 몫일 터다. 딱하도록 임포턴트한 리더십을 전복하고, 우리가 결정권을 손에 쥐게 될 그 날이 기다려지지 않아들? 

그때까지 사건과 시간을 쌓느라 도리없이 나는 바쁘고 외로울 것 같다고 – 결심이 아니라, 예감한다.

댓글 남기기

워드프레스닷컴으로 이처럼 사이트 디자인
시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