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의 킥

겨울의 끝자락에 여름나라에 다녀왔다. 여름나라에서 자연에서 난 것들 잔뜩 먹고 겁없이 해에 맨얼굴을 내놓았다. 돌아와서 보니 새삼스레 몸과 얼굴이 관리대상이 되어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몸을 받아들여라, 자연과 싸우려고 하지 말아라. 지성인답고 점잖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치앙마이 야시장 한켠의 과일가게에서 4000원에 망고 세 개를 사면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듯한 청년들이 능숙하게 껍질을 벗기고 씨를 빼고 썰어 도시락에 담아준다. 묵직하고 달콤하고 향긋한 망고가 참 맛있었다. 치앙마이 항동 깊은 산속 정글에 묵었던 밤, 엄마는 태국은 땅에서도 스파이스 향이 난다고 했다. 

물에서도 과일에서도 나는 그 킥을 사랑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콘텐츠, 알고리즘 같은 만들며 달러 벌이를 하는 이들이 덜 개발된 여름 나라에 속속 모여드는 것은 – 그곳의 풍요와 물성 때문이라고 믿는다. 콘크리트에 둘러싸여 저품질, 고가의 의식주를 소비하며 사는 건 풍요가 아니다. 자연에 둘러싸여 중품질, 저가의 의식주를 소비하며 여하간 뭔가 남는 게 있는 것이 풍요다.

전세계의 메가시티들이 표준화되어 간다. 고밀도의 공간과 시간 속에선 신경쇠약과 정신질환이 창궐한다. 웰니스의 예시적 열거 대상인 요가나 명상, 채식은 이제 물질을 넘어 비물질화 되어가는 현대문명의 산물이 아니라 고대의 유산이다. 촌스럽고 예스러운 곳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고대의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의 관성이다. 

서울에서 나는 이민자(immigrant)이고, 부산에서 나는 국외거주자(expat)다. 친구들과 동료들 모두 서울에 있고, 중요한 일은 서울에서 일어난다. 가장 좋은 시절을 천리 밖의 부산에서 보내도 괜찮은 걸까. 청운동 쯤에 숙소를 잡으면 인왕산의 기개와 고요를 즐길 수 있고, 인텔리겐치아 커피의 미감에 둘러싸일 수 있어 침이 넘어간다.

그러나 청운동, 효자동의 부동산을 보노라면 입이 마른다. 아예 매물이 드물다. 강남에 대한 욕망은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유동성, 그리고 거기서 자란 이들의 관성에 기인할 뿐이다. 매물은 언제나 있으니 돈만 준비하면 된다. 오히려 서울의 유서 깊은 동네일수록, 나 같은 이민자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 

기득권이 땅으로 불로소득을 누려온 연원은 인간의 역사만큼 길다. 최첨단을 자처하는 미국의 공룡 기업들이 대면근무로 전환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이 대통령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역병 덕에 누렸던 소리 없는 잔치는 끝나가고, 이제 비싸고 척박한 도시로 돌아갈 시간이다.

치앙마이의 자연은 원시를 간직하고 있고,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간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많다. 날씨 덕인지 관절과 근육이 부드럽게 풀렸고 얼굴도 편안해졌다. 아침 일찍부터 절로 눈이 떠졌다. 초록의 문해력을 가진 사람에게 알맞는 주파수를 가졌다. 이런 곳이라면, 살균되지 않은 생각들이 잉태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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