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호연지기

25년 1월 1일자로 임명된 정계선 헌법재판관은 서울대 의예과 1학년 재학 중에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을 읽고 진로를 변경해 서울 법대에 재입학했고, 사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했다. 서울 법대 재학 시절엔 학생운동을 했고, 법관이 되어서는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을 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연수한 뒤 헌법연구관을 지냈고, 공직비리, 뇌물 등 부패사건을 전담하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 재판장으로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 추징금 약 82억원을 판결했다. 

그 배우자는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인데, 정계선 재판관이 재워주고 거둬줘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황 변호사는 홍콩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일찍이 호연한 관점을 갖게 됐고 평생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위해 살았다. 나와는 꼬꼬마 라디오작가 시절, 영어 인터뷰 섭외 요청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내가 변호사가 된 이후 해외 입양인 소송을 함께 했다. 황필규 변호사는 언제나 겸손해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데, 정계선 재판관의 이력만을 나열해봐도 – 그럴만 하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권영국 변호사 부부와 신년 산행을 했다. 정의당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십자가를 지듯 당 대표를 맡은 권변은 ‘정치인’이 될 욕심이 없는 정당 대표다. 함께 차별금지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나는 한국 남성이라면 한번쯤 해외에서 이방인의 입장에 처해보는 경험이 유익할 거라고 했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을 객석에서 지켜본 산드라 오 배우가, ‘아, 저 사람은 한 순간도 소수자였던 적이 없구나’, 라고 했던 말을 인용했다. 군복무까지 마친 자녀를 뒤늦게 캐나다에 보낸 권변호사 부부는 조용히 공감했다. 

반면, 내 또 다른 지인 – 외교관 부부와 해외 파견과 파견 사이 한국 생활을 정리하던 중, 식사를 함께했다. 그들은 외국에서 학령기를 보낼 운명인 자녀가 인종차별로 괴롭힘 당할 것을 우려했다. 자녀가 소수자가 될 바엔 차라리 트럼프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부모 마음이라고 했다. 가족은 과연, 시민의 무덤인 것일까. 조영래, 황필규, 권영국 변호사는 배우자, 가족들과 함께 시민으로 살았다.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뜻을 같이 하고 인생을 반려할까. 우리도 가족이자 시민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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