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다대포 해변의 갈대밭에서 영화 친구들과 해넘이를 하면서 자연스레 2025년을 그려보았다. 늘 숙원처럼 생각하던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을 봐볼까 생각하다가 – 아니 내가 더 유능해봤자 일만 더 많아지겠지, 나 일 시키는 사람만 좋겠지 생각하고 놀랐다.
임금생활의 기본 원리는 시간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므로, 근로소득자가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반드시 (not necessarily) 유능하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만큼 일에 시간을 들였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성과 취향은 일만 하는 – 시간이 빈곤한 사람에겐 허락되지 않는다.
새해엔 유능은 적당히만 하고, 스펙도 그만 쌓고, 나이에 맞는 지성과 취향 그리고 가볍고 유연한 몸을 갖고 싶다. 시험공부하듯 처절하게 사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해야 되는데 생각만 하고 미루던 것들을 진짜 해내면, 비로소 내가 되고 싶던 사람이 진짜 되어보면 어떨까.
변호사는 본질적으로 대리인이기 때문에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일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마땅한 의문이 뒤따른다. 근로소득으로 사는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면 뭘 해야할까. 우선은 남의 일에 시간을 최대한 덜 빼앗겨야겠다.
계절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힘껏 느끼고, 부모님과 더 자주 밥 먹고, 가벼운 몸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좋은 책, 영화, 음악이 나를 통과하며 내면에 일으키는 변화를 관찰하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외국어를 공부하고. 솔직하고 서늘한 사유를 유지하면서.
새해 첫 토요일이었던 오늘 아침엔 시나몬을 넣고 아삭한 사과잼을 만들었다. 아직 따뜻한 잼 병을 품고 경주에 갔다. 동네 빵집의 곡물빵에 잼을 발라 엄마랑 맛있게 나눠 먹었다. 관습적인 제도에 들어맞지 않은 인생일수록 친밀감을 나누는 행위는 생존에 필수적이다.
하여간 스펙으로 무장하는 게 아니라 홀로 또 함께 인생을 사는 기술이 늘어야 – 삶에 자신감을 가져야 뭐든 되지 않겠나.